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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공책  부끄럽고 아름다운

                           -----  서경옥 지음 . 이수지 그림--------

 

 

만약에.......

 

 만약에 나에게 외갓집이 있었다면

 만약에 나에게 아흔이 되신 멋쟁이 엄마가 계시지 않았다면

 만약에 지금 연세 아흔 넷이신 시어머님께서

 정신을 놓아 버리지 않으셨다면

 만약에 누워 계신 시어머니께서 시를 멋지게 읊지 않으셨다면

 

만약에내가 바느질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면

만약에 남편이 양말에 구멍을 내지 않고

못에 옷이 짖겨 들어오지 않았다면

만약에 어느날 남편이 마당으로 오토바이를 끌고 들어오지 않았다면

 

만약에 우리 집 근처에 거문고 명창 신쾌동 선생님이 살지 않으셨다면

만약에 내가 산 위에서 어떤 여인의 판소리 한마당을 듣지 않았다면

만약에 우리 집에  깨끗한 우물이 없었다면

 

만약에 내 딸이 남해 어느 주막에서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면

만약에 내가 봉평에 내려와 살이 않았다면

 

만약에 내가 나무 및에서 한여름에 책을 읽다가

책 위에 떨어진 자벌레를 보지 않았다면

 

만약에 딸이 남산만한 배를 부둥켜안고 그림을 그려주지 않았다면

만약에 손주가 둘이나 태어나지 않았다면

만약에 남편이 내 글에서 주어들을찾아 주고

멋진 접두사들을 찾아 주지 않았다면

 

만약에 나의 글을 읽은 나무선 씨의 조용한 배려가 없었다면

만약에 동창들이 컴퓨터에 올린 나의 글을 열심히 읽어 주지 않았다면.....

 

난 이렇에 열정을 가지고 내 글들을 써 내려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제일 고마운 것은 딸이 자기 엄마라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그림들을 그려 준 것이다.

 

                                                     ...... 엄마의 공책 /머리말 전문/............